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세급 전함 (문단 편집) === 처량한 마지막 === [[레이테 만 해전]] 이후 함재기를 구할 희망이 영영 사라진 이세와 휴우가는 그 맷집을 살려 격납고를 창고로 개조, 동남아에 아직 남아있는 자원을 일본 본토로 가져오는 북(北)호작전의 주역으로 활용되었다. 이때에 가서는 공급이 안되는 '''함재기 탑재는 포기'''하고 3번과 4번 주포탑의 사격각도를 방해하는 함재기 발진용 캐터펄트를 제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 이 작전에서는 [[싱가포르]]에서 일본까지의 항로를 중국 연안에 거의 붙어서 몰래 전진하는 방식을 사용해서 성공을 거두었다. 석유, 고무, 주석등의 전략물자를 일본 본토로 수송하는데 성공하였으나 북호작전에 참여한 군함들이 수송한 총량은 중형(中型) 화물선 1척 분에 불과하였다. 그러 북호 작전으로 가져온 각종 자원, 특히 석유는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이 해외에서 들여온 사실상 마지막 자원이었다. ||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12a9ec15-s.jpg|width=100%]] || || [[구레 군항 공습]]에서 침몰한 이세 || 그러나 일본 본토로 돌아온 후에는 연료 부족으로 본토의 구레항에 짱박히는 신세가 된다. 이렇게 되자 대공화기는 다 뜯어내 육상진지로 이동시키고 주포만 남아 [[해안포]]로 사용되던 가운데 [[구레 군항 공습]]이 벌어지자 [[3식 통상탄]]을 발사하면서 최대한 항전했으나 무의미한 짓이었다. 3식 통상탄의 대공성능은 형편없다는 건 상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의미도 없는 주포 사격만 열심히 하다가 휴우가는 7월 24일에 폭탄 10발을 맞고 남아있던 승조원 1천여명중 전사자 204명에 중상자와 경상자가 600명에 달하는 손실을 당하며 27일에 좌초되며 격침되었고, 이세는 7월 24일에 폭탄 4발을 맞은 후 7월 28일에 [[공고급 순양전함]] 하루나, [[아오바급 중순양함]] 1번함 [[아오바(중순양함)|아오바]]와 함께 미 해군의 집중공격을 받은 끝에 폭탄 16발을 맞고 전사자 573명을 손실하면서 격침, 착저하여 패전을 맞이했고 이후 이세와 휴우가 모두 고철로 스크랩되었다. 이세가 격침된 후 안전상의 이유로 2번 주포탑의 주포탄을 제거하려고 마지막으로 발사를 했는데, 이걸 가지고 "주포를 쏠 수 있으니 격침된 게 아니다"라고 우기는 건 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